생활공동체를 실천하는 비혼 페미니스트에게 ‘공간’이란

<주거의 재구성> 공덕동하우스 이야기(2)

홍혜은 2020-08-09

비혼지향 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는 현재 공덕동에 공간을 갖고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해 공덕동하우스가 사용하는 공간이 없고, 가장 최근의 총회는 대관한 공간에서 치렀다. 나와 몇몇이 서대문구 모처로 이사를 와서 생긴 변화다.

 

서대문구의 야심 찬 사업으로 여러 주체들을 ‘소셜믹스’한, 그러니까 거주자를 국가유공자, 신혼부부, 청년으로 각각 카테고리별 모집해 다른 동에 넣어 뒀는데 크게는 한 단지에 들어가게 해놓은 공동체주택에 들어와 있다.(살아 보니 엄밀히 말하면 다양한 사람이 함께 잘 살게 한 것도 아니고, 엉망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이사는 공동체에 대한 나의 경험의 결을 다시 한 번 바꾸어 놓았다.

 

▲ 이사 오자마자 현관문에 매단 친구의 여행 선물인 조개껍질 장식  ©홍혜은

 

자연발생적 공동체와 공공임대 공동체 주택 

 

공덕동하우스는 결혼을 경유하지 않는 다른 관계를 중심으로 ‘생활공동체’를 지향했다. 혈연가족 이외 생활공동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나도 모르겠다. 누구도 완벽히 정의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고, 한 가지 정의가 나오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도 여긴다. 다만 공덕동 공간은 거실 딸린 투룸이니 한 서너 명까지 사는 게 공간적 한계로 정해진 ‘정원’이었고, 그 건물이 마음에 들어서 같은 건물 4층에 친구가 이사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눴지만 단기 월세 계약, 이사를 결정하기 어려운 각자의 시기, 금전적 사정 등으로 논의는 거기까지였다. 공덕동 이상으로 공간이 확장되고 재구획되면 관계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그때의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은 있었다. 나는 혈연 가족과 살 때 열 평 아파트에 일곱 식구가 살기도 했다. 공덕동이 그것보다 넓었으니까 끼어서 살면 우리도 사람을 공간에 우겨 넣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생활공동체가 ‘주거공동체’로 인정받아 ‘대안가족’ 행렬의 맨 끄트머리에 줄을 설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장녀로서 고3이 되자마자 혈연 가족의 비좁은 주거 공간에서 첫 번째로 분리되어 나왔다. (독서실 책상에서 먹고 자고 했는데, 이미 태어나서 한 번도 부모집이라고 상상되는 30평대 이상 넉넉한 아파트를 가진 적이 없으니 딱히 그렇다 할 ‘집’의 경험이 없이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여튼 그 분리 생활이 15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데도, 재작년까지는 혈연 가족과 ‘한 가구’로 모든 복지 혜택에 묶여 있었다. 같이 사는 것과 가족으로 취급 받는 것은 서로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같이 살지 않아도 소속감, 연결감을 갖고 가능한 대로 친밀을 나누고 돌봄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생활공동체였다. 그래서 같이 사는 사람, 몇 달 같이 살다가 이사 간 사람, 같이 살지 않아도 일주일에 두 번은 오는 사람, 삼 개월에 한 번 정도 오는 사람까지 모두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 공덕동하우스, 공유하는 서재 겸 작업 공간  ©홍혜은


하지만 이번 이사에서 윗층, 아랫층 이웃으로 여러 명이 가까이 지내는 경험은 이전과는 또 다른 식의 관계 경험이다. 근거리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이 있단 것의 의미를 점점 더 알아가고 있다. 쉬는 날 서로 잠 깨는 시간 봐서 근처 천변을 함께 달리고 들어온다든지, 어딘가 강연을 들으러 나갔다가도 함께 들어오는 길에 소감을 나눌 수 있다든지, 수박을 아무리 큰 걸 사 와도 아무 걱정 없다든지, 목적 없는 산책을 여러 번 같이 하다가 동네 고양이들 안면을 터서 고양이 성격, 생김새로도 한창 수다를 떨 수가 있다든지, 그런 게 좋다.

 

‘함께 살기’가 주거지에 있는 물건의 소유권을 다 섞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구 세대주인 동생과 현 세대주인 내 물건이 섞여 있는데, 그건 우리가 무소유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저소득계층 집안에서 한 공간을 쓰는 자매로 살아 온 결과값이다), 또 감정적이고 물리적인 거리 조절에 실패해 사고가 나지 않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이웃으로 살기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내 인식 세계에 괜찮은 관계 방식의 경험이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아 기쁘다.

 

제도는 여전히 우리를 주거공동체로도, 생활공동체로도 인식하지 않는다. 다만 1인 가구들의 ‘모둠’일 뿐이다. 여기 입주하기까지도 많은 일이 있었다. 방이 세 개나 있지만 방마다 한 사람이 심사 받고 한 사람 명의로 계약해야 해서, 들어오고 싶은데도 주소지, 취업여부, 소득증명, 신용등급 등등 여러 복잡한 기준에 걸려 못 들어온 공동체원들이 있었다든지, 공공임대형 셰어하우스에 대한 주택 대출 기준이 부재한 채로 한 개 호실에 대해 여러 명이 버팀목 대출을 시도하느라 은행, sh공사, 국토교통부의 ‘몰라요’, ‘안돼요’, ‘저희 소관이 아니라서’, ‘그건 저쪽에 얘기하세요’를 돌림노래로 들으면서 마음 졸이며 여기저기서 박대 당했다든지. 대출 건은 결국 주변 주거권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민원을 조직하고 언론을 이용해 세칙을 개정하는 쾌거를 누린 듯 했지만, 정작 현장이 빠르게 따라와 주지 않아서 아무도 그 대출을 못 받기도 했다.

 

입주 후에는 방마다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할 것이냐, 거실에 스탠드 에어컨을 설치할 것이냐를 구성원들끼리 열심히 민주적으로 토의해 결정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호실엔 스탠드 에어컨을 설치할 공간 같은 게 애초에 없었다든지, 전화를 걸어 항의하니 “원래 그 집은 혼자 한 사람씩 들어와 살라는 거다”라고 설명을 듣는 등 소소하나 거대한 몰이해의 장벽이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사실이 아니다) 수입도 적은 주제에 결혼-출산, ‘애국’ 루트를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제도가 반기지 않는 삶을 살아서 이런 것일까? 이렇게 저렇게 추측해 볼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이 나라의 출산율은 2017년 1.05명, 2018년 0.98명, 2019년 0.92명, 차별 사회에서 앞으로도 더 신나게 떨어질 테니까.

 

▲ 서대문구의 공동체주택, 새로 이사온 집에서 내려다 본 마을.   © 홍혜은


마을의 일원이 되기?

 

공공임대 ‘공동체주택’에 살아 보기로 결정한 중요한 이유는 공적으로 제공되는 커뮤니티 공간 이용 경험 기회가 주어진단 점이었다. 사적 공간인 주거 공간을 생활공동체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때와 또 다른 식으로 관계가 바뀔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주할 때 관리인에게 커뮤니티실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가 “(보아하니 이용할 수도 없어 보이는데) 거기는 왜 물어 보냐? 경로당인데” 하는 대답을 듣고 충격 받기도 했다. 사실 그 공간이라는 게 유공자 할아버지들 사는 동 아래 위치해 있는 게 스포일러였다.

 

구청에서는 그 공간을 유공자, 신혼부부, 청년이 꾸역꾸역 같이 쓰는 게 소셜믹스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몹시 탁상공론적으로 상상된 소셜믹스다. 온 대학이 ‘공용 공간’이라고 표면적으로는 말해지지만 사실상 술 먹고 널부러져 소파에서 안심하고 잘 수 있는 것은 남학생이기 때문에 여학생 휴게실이 따로 있어야 했던 역사를 페미니스트로서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 무려 입주하기도 전에 공동체주택 심포지움 아이디어 콘테스트 대회에 나가 입상하는 방식으로 입주 주체간 커뮤니티실 개별 공급을 요구해 보기도 했지만 구청과 SH공사 측은 여태껏 묵묵부답이다. 아직 주어진 커뮤니티실은 없다.

 

“한 아이를 돌보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수사적 표현이 아닌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방이나 집이나 4인 가족 정도의 단위가 아니라 사회적공동체 단위로 소수자가 살아갈 권리를 논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는 소수자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아직 내게 부재하다.

 

▲ 마을 천변.  ©홍혜은

 

공덕동하우스 활동 일환으로 마포구에서 ‘우리동네 젠더스쿨’ 사업을 했다. 당시 큰 주제는 “잘 살고 잘 죽기 프로젝트”였고, 그 중 한 꼭지로 마포구를 둘러싼 비혼 퀴어 마을운동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마포주민 오김현주 님께 부탁 드렸다. 강사를 섭외하기 전 과거의 마포구 비혼 퀴어들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를 찾아보면서, 내게는 이런 경험이 생겨날 개연성이 이리 낮게 느껴지는지 뜯어 보았다. 내가 시민권이 부재한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이었구나, 생각했다. 선거구 유권자로 등록된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불일치하는 삶을 10년 살고, 많으면 1년에 4번 이사, 길어야 2년 단위로 구에서 구를 옮겨 다닌 사람에게 마을주민 정체성이 생겨날 리가 없지 않나?

 

이제 공적인 장에서 내 의견을 꽤 잘 말하고, 남들에게도 어느 정도 의견을 존중 받는 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바로 어제 아랫집 이웃에게 놀러갔다가 맞은 편 호실에 안면 있는 다른 입주자가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중년 남녀와 엘리베이터 근처를 돌아다니길래 재빨리 계단 아래 안 보이는 데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순간의 반응이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사사삭.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 웃기기도 했지만 정말 놀랐다.

 

마치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옥상 화단에 팔을 걷어 붙이고 올라가 말라 죽은 나무를 뽑아버리고 과실수 같은 걸 본격적으로 심고 있는 듯한 저 할아버지 무리를 이쪽 옥상에서 내다 보면서도, 왠지 내가 어떻게 이걸 싹 다 갈아 엎을 수가 있나? 싶고, 하지만 나도 옥상이 있는 사람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한구석에 허브 화분을 두고 기르는 것처럼. 마음 어딘가에는 항상 어딘가 ‘뜬 사람’의 정체성이 있고, 그 감각이 새로운 것에 행복해 하고 그 행복을 남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과 공존한다.

 

여기까지 와서 털어 놓는 사실은, 이 주택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입주 전부터 열 개 동 중 두 개 동의 임시대표를 맡아 일곱 번의 동 주민협의회를 진행했다. 작년 말 전체 회의에서는 고성을 높이는 젊고 늙은 남자 대표들에게 유일한 청년여자 대표로 대거리를 했다. 살게 될 터전을 잘 닦아 놓고 싶어서 좀 무리하긴 했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역량으로는 할 만했다 생각했는데. 하지만 몸에 새겨진 감각들은 쉽게 떨쳐지지 않고, 나는 아직도 이 주택 전체와 마을이 내 공간이라기보다는, 내가 사는 이 호실과 아래의 이웃 공동체원의 호실만이 편안한 공간이라고 여기나 보다.

 

▲ 누군가 품을 들여 가꾸고 있는 마을 내 화단의 꽃   ©홍혜은


앞으로 어떤 공동체의 모습으로 흘러갈까?

 

그래서, 이제 내가 너무 궁금해 하고 기대되고 약간 무섭지만 내게 무척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수자에게 친화적인, 그러니까 내가 편히 일원이 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을에서 나로서 받아들여지며, 마을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살아가는 경험이다. 그러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 해야 할까? 개미처럼 일해서 자본을 모아 공동소유의 협동주택 짓기? 공동체주택이 제도적으로 없어지기 전에 협동조합이나 사업체를 내서 재빨리 대출? 공공임대주택사업에 정책적 개입하고 입주자로까지 들어가기?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중 어떤 것이 나한테 맞는 옷인지를 몰라 우선은 주어진 지면에 현재의 고민을 풀어내본다.

 

사실 ‘고민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나도 내 마음을 조금 안다. 나와 내 주변은 억 단위 돈을 턱턱 낼 수 있는 부자가 없고, 아무래도 테레즈 클레르가 프랑스에서 ‘바바야가의 집’을 프로젝트로 올릴 때 그랬던 것처럼 공동체 생활의 필요, 공공적 가치, 사회적 비용 절감 가능성 등을 앞세워 정책 방향과 공공임대주택 사업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그런 계산으로 자꾸 기울어 가는 걸. 여기서부터는 웬만한 수의 머리를 모아가지고는 다 풀 수 없는 고민이니, 이런 고민을 함께 할 페미니스트 동료들을 늘 구하고 있다는, 어딜 가서나 강연 말미에 덧붙이곤 하는 수소문을 적어 남겨 두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모색하는 데 어려움 없는, 그래서 좀더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편집자 주: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기사입력 : 20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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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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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 20/08/10 [17:34]
친구들이랑 이웃으로 사는게 저의 로망인데 공동체주택이라는 게 생겼다니 부럽습니다. 임대주택들이 많아지고 선택지도 다양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ㅠㅠ
곰돌이 20/08/11 [10:48]
저도 제가 원하는 사람들과 모임이 있는 동네로 가려고 생각중인데 글 보면서 넘 힘을 얻었어요 감사합니다 ^^
휴먼링커 20/08/27 [12:56]
저는 인천검단에서 공덕동하우스와 비슷한 3549 싱글 주거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이런 유사한 컨셉의 공동체들이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관심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네트워크 연결망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저의 블로그를 남기니 관심있는 분은 편하게 연락주세요.
https://blog.naver.com/matew/222065003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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