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불법촬영…“조심하라고만 배웠어요”

달리의 생생(生生) 성교육 다이어리: ‘예방’의 주체는 누구일까

달리 2020-09-11

피해예방교육의 단골멘트 “조심해”

 

대강당을 꽉 채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집합 교육치고는 진행도, 호응도 괜찮은 날이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강의를 마쳤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려다 앞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잘 들었죠, 여러분?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대답한다, 안 한다? (학생들: 안 해요~) 그래요, 이제 알았으니까 조심해야겠죠?”

“네~”

 

천진한 선생님의 질문에 순순한 학생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발길을 돌려 학생들과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내가 두 시간 동안 뭘 한 거지?’

 

나는 두 시간 동안 성매매 예방교육 강의를 했다. 평소 학교에서 성폭력에 비해 성매매 주제의 강의 의뢰는 별로 없는 편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한 수업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수업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선생님의 한 마디로 또다시 “조심해”만 남게 되었다. 성적 대상화와 성구매 행위의 문제를 강조한 반(反)성매매 교육의 서사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데 익숙한 ‘예방’교육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조심해”는 이 교육에서 가장 경계한 방향이자, 청소년들의 젠더 의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마이크를 다시 달라고 할까 잠시 고민하며 망연자실해 있던 사이 학생들은 우르르 일어나 밖으로 흩어져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 나오는데 아쉬운 마음이 잦아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그런데 그런 장면은 처음이 아니었다.

 

가해하지 않으면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의무화된 다양한 예방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흡연예방, 자살예방(최근에는 ‘생명존중’이라 부르기도 함), 게임중독예방… 거기에 (젠더기반) 폭력예방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예방’일까? 처음 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내 머릿속에선 그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무엇을 방지하는 거지?’

‘어떻게 예방하라는 거지?’

‘예방의 주체가 누구지?’

가장 고민이 된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강사로서 나의 교육 목표와 방향은 과연 ‘예방’에 있는가?

 

▲ 교육부가 2015년에 만든 ‘학교 성교육 표준안’ 중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던 성폭력 대처 방법 예시.

 

표준대국어사전에 의하면 ‘예방’(豫防)이란 ‘질병이나 재해 따위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처하여 막는 일’을 말한다. 흡연, 자살, 게임중독, 젠더기반 폭력과 같은 사회문제를 질병이나 재해와 비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폭력예방교육 현장에서 돌림노래처럼 강조되는 “조심해”가 실제 질병이나 재해에 대한 안부 인사(“감기 조심해”, “태풍 온다니까 조심해”)의 경우에는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반면 여기에 “성추행 조심해”, “불법촬영 조심해”를 대입해보면 기괴하게 들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많은 교육과 공익 캠페인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강조해 퍼뜨리고 있다.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는 이제 낡은 방식의 성교육이라고들 하나,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이나 아동 청소년을 위한 성폭력 예방교육 자료를 살펴보면 여전히 조심, 거절, 저항의 주문을 반복 재생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런 교육을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결국 한 가지만 남을 것이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지 말 것.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은 폭력을 예방하는 것인가, 아니면 폭력 그 자체인가?

 

본질적으로 폭력‘예방’은 가해자의 몫이다. 가해하지 않으면 피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 단순하고 분명한 책임을 왜 거꾸로 돌려 자꾸 피해자들에게 ‘조심’의 의무를 떠넘기는가? ‘가해방지’야말로 성폭력 문제 해결에 가장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며 이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토록 가해의 책임을 외면하고 피해‘예방’을 강조하는 의도가 대체 무엇일까? 교육이 의무화된 지금까지도 젠더기반 폭력에 대해 가해자나 권력자의 언어만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폭력예방교육에서 빠진 빈칸은 바로 ‘젠더 인식’

 

어쩌면 폭력예방교육이라는 공식용어 자체가 교육의 모호한 방향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젠더’를 생략할 수는 없다. 젠더와 권력의 연결고리, 그것이 어떻게 폭력과 관계 맺는지를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바라보아야 이 교육에 진정한 의미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빈칸으로 처리된 ‘젠더’를 되찾으려면 성차별 문제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의 근간에 차별이 있다. 차별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결국 이 교육의 핵심목표와 맞닿아 있다.

 

▲ 페미니즘 성교육에 참여한 여자중학생의 수업 소감.   ©달리


청소년 대상 성교육이나 성폭력 예방교육에 가면 여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성폭력 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질문자들이 가진 공포와 불안, 절박함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이 질문이 반복될 때마다 손발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누가 어떻게 적절한 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그 답에 따라 살아가면 정말 성폭력을 피할 수 있을까.

 

이들의 일상이 두려움으로 물들지 않으려면, 성폭력 문제 해결에 필요한 상상력과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이들을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위치 짓는 것을 넘어, 스스로 힘을 키우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이들 특히 여아에게는 늘 조신하라와 조심하라는 훈육이 동시에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보호자를 비롯한 어른들이 염려하는 마음과는 정반대로, 조심하라는 주문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보호하는 명령으로써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순진하게 가해자를 믿은, 좀 더 정숙하게 행동하지 않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결국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난 자신을 탓하느라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폭력은 약자가 조심해서 방지되거나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가해자를 향한 주문과 명령의 언어를 찾는 데서 진짜 ‘예방’교육이 가능해진다.

 

[글쓴이: 달리. 페미니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배우는 사람이었지 가르치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사는 지방/소도시/농촌 지역의 여성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청소년 젠더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주제로 전국적인 강의 활동을 하는 중이다. 1년에 1시간짜리 강의로 세상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인생에 1분이라도 성차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 건 중요하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100명 중 1명이라도 눈 마주치며 들으면 대성공이라는 낮은 기대감으로 오늘도 수업에 나간다.]

기사입력 :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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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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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20/09/12 [11:57]
공감합니다. 성폭력의 공포를 여성에 대한 통제와 연결시켜서 어릴적부터 여자아이들을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것 같아요. 평생을 가죠.. 
ㅇㅇ 20/09/12 [12:30]
샘 우리학교에도 좀....
J 20/09/15 [12:27]
맞아요. 조심하라는 것만 너무 강조되는 거 같아요. 
drilove 20/11/07 [23:41]
형체없이 두루뭉술하게 갖고 있던 생각들이 정리가 디네요. ‘가해자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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