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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동물
<동물권 이야기> 비인간동물에 대한 두 가지 인식과 잣대
박김수진   |   2013-10-02
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 주]
 
설화와 동화, 교과서에 등장하는 비인간동물들
 
한국의 구전설화에는 호랑이, 토끼, 구렁이, 여우, 까치 등 수없이 많은 비인간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서양의 각종 신화에도 독수리, 뱀, 소, 말 등 수많은 비인간동물들이 등장하지요. 설화와 신화 속 비인간동물들은 인간동물과 다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동물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많은 비인간동물들이 등장합니다. 반려동물인 강아지를 사랑하는 어린이의 사연, 동물원 속 동물들이 행복해하는 모습, 인간의 우주 정복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독한 훈련을 받다가 우주 비행선에 올라 사망한 실험동물 라이카 이야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비인간동물이 나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동물은 언제나 수많은 다양한 비인간동물과 친밀하게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비인간동물을 잔혹하게 이용해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친밀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비인간동물 자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 친밀함조차 인간동물 중심으로 구성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컨대 ‘의인화’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구전설화와 신화에 등장하는 비인간동물들은 인간동물의 언어를 사용하는, 비인간동물의 탈을 쓴 인간동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동물문화연구회>의 김찬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류는 다른 동물들과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면서도, 문화적인 차원에서 그들에게 독특한 정서와 의미를 부여해왔다. 고대의 많은 신화들에서 동물들은 ‘환웅’처럼 초월적인 상징으로 군림하는데 이는 토테미즘과 관련이 깊다. 만화와 동화에서는 수많은 동물들이 의인화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또한 일상 언어에서도 사람의 성향이나 어떤 상황을 묘사할 때 종종 동물로 비유된다. ‘여우처럼 교활하다’, ‘늑대처럼 엉큼하다’, ‘곰처럼 미련하다’, ‘양처럼 온순하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 ‘잉꼬 부부’, ‘평화의 비둘기’, ‘매파와 비둘기파’, ‘꽃뱀’, ‘개미군단’, ‘다크호스’, ‘상아탑’, ‘장사진을 이룬다’(긴 뱀처럼 행렬이 늘어서 있다), ‘사족을 달다’, ‘유예’(중국의 신화 속에 나오는 가상의 두 마리 동물로서 머뭇거리는 습성을 지녔다고 함). 동물들은 신성함의 아이콘에서 인간성의 표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채색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소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그 동물의 실제 속성과 무관하게 인간이 지어낸 허구적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김찬호, 2012)
 
인간에 의해 각색되고 의인화된 ‘가짜 동물’
 
▲ 어린이들은 ‘꼬마 돼지 베이브’를 참 좋아하지만, 돼지고기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 포스터
교과서에 등장하는 비인간동물들도 주인공 어린이와 인간동물의 언어로 대화를 하는 등 ‘비인간동물의 탈을 쓴 인간동물’인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무엇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비인간동물들을 통해 교과서 저자나 편집자가 알리고 싶었던 것이 ‘동물원 속 동물들이 행복할 리 없다’라거나 ‘라이카는 라이카 자신이 인류의 우주 정복을 돕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아닐 겁니다.
 
비인간동물을 의인화하고, 비인간동물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비인간동물을 인간동물의 ‘익숙하고도 영원한 친구’로 위치시키는 것은 오로지 인간동물의 시선, 의식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동물과 친숙한 비인간동물을 아무리 강조해 드러낸다고 하여도 대부분의 비인간동물이 인간동물에 의해 식용동물로, 모피동물로, 전시동물로, 애완동물로, 의인화된 가짜 동물로 살아왔음을 부정하기는 힘들지요.
 
그럼에도 인간동물은 삼겹살용으로 키워지다 죽는 돼지에게 고통을 느끼거나 하는 등의 감정 따위는 없다고, 동물원 속 비인간동물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행복해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인간동물들은 비인간동물이 처한 현실을 우리 멋대로 각색하고, 무감각하게 비인간동물들을 활용해왔습니다.
 
많은 동물권 책에 등장하는 ‘꼬마 돼지 베이브’의 예시가 있어요. 어린이들은 ‘꼬마 돼지 베이브’를 참 좋아합니다. 어린이들은 훌륭한 양치기 돼지로 성장하는 베이브의 귀엽고 영리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지요. 하지만 대부분 그 뿐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부모님에게 “더 이상 돼지고기를 먹지 않겠어요!”라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반려견과 ‘똥개’의 차이는?
 
첫 칼럼에서 말씀 드렸지만, 강아지 형상인 딸 투투와 함께하면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는 다는 것에 관해 불편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던 저도, 당시에 그 ‘불편한 마음’의 정체를 더 궁금해 한다거나 알아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리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해도 스테이크 맛집을 찾아 다니고, 돼지 갈비집을 찾는 일을 줄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인간동물인 강아지 투투를 보면서 ‘세상에! 강아지인 투투도 인간동물인 나처럼 슬픔, 기쁨, 행복, 고통, 지루함을 다 느끼고 안다니!’라 놀라면서도 돼지, 소, 닭, 오리 등의 비인간동물의 감정과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눈을 감아버린 형국이지요.
 
이런 사례들은 우리들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제역으로 살처분당하는 수많은 돼지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저녁이면 황사로 칼칼해진 목을 부드럽게 만들겠다면서 돼지 삼겹살을 주문해 먹을 수 있죠.
 
양떼 목장에 올라 귀여운 양들을 쓰다듬고 그 양들을 위해 ‘먹이주기 체험’을 하고는, 입구로 내려와 그 양들로 만든 양고기 꼬치를 구입해 먹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투투를 사랑해주시는 저희 부모님은 개고기를 좋아하시죠. 친한 친구가 소위 ‘보신탕 집’을 운영하고 있어 자주 드신답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엄마, 투투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개고기를 먹을 때마다 뭔가 마음이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아요?”라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얘, 투투랑 개고기랑 같니?”라고 답하시더군요. 부모님에겐 ‘반려견’인 투투와 식용견으로 길러진 마당의 ‘똥개’ 봉순이는 다른 종의 동물인 것입니다.
 
“어떻게 반려동물인 개를 키우면서 개고기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져 묻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찾아보니 개와 함께하면서도 개고기를 즐겨 먹는 분들도 있더군요. 반려동물인 고양이와 함께하면서도 개고기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개식용 반대’의 목소리를 비아냥대고 비판하는 분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려동물인 개를 키우면서 개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치맥’(맥주에 치킨)이나 스테이크를 즐기는 분들도 굉장히 많지요.
 
어떤 인간동물에게 있어 반려동물은 ‘동물이 아닌 동물’인 셈이고, 반려동물 이외의 동물은 그저 동물일 뿐입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고양이는 반려동물이고, 남과 함께하는 강아지는 식용으로 써도 무방한 동물이 되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의 50%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로 채워져 있고, 아동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 중 3분의 2가 동물과 관계된 것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의 즐거움과 교육을 위하여 비인간동물을 감금시켜 운영하고 있는 동물원에 방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인간동물은 동물실험의 안정성이 확보되었다는 스킨과 로션을 얼굴에 바르고, 애완견인 투투와 비비에게 새로운 지위가 필요하다며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창합니다. 인간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닌 “실험동물”에게는 “비비”가 아닌 “23056”과 같은 숫자가 부여된다는 사실에 대해 무관심하지요.
 
‘이중 잣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
 
인간동물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고기 덩어리의 실체에 관해 자세하게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새끼 돼지가 태어나자마자 송곳니를 절단 당하고 마취 없이 꼬리가 제거된다는 사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농장동물의 운송과 도축 전 과정에 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도 괜찮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육점과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붉은 살코기는 붉은 살코기일 뿐이지,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 잔인하게 도축된 살아있는 생명체의 근육과 피가 아니어야 합니다.
 
포장 상태는 최대한 해당 고기가 온전한 형태의 생명체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깔끔하고 단순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순대는 순대여야 하고, 선지는 선지여야 하지, 인간동물이 순대와 선지를 섭취할 때마다 그것이 인간동물에 의해 학대당하고 죽은 동물의 ‘피’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물고기는 어떻습니까? 개가 식용일 수 없다면 돼지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요. 돼지가 식용일 수 없다면 광어도 식용일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파리. 파리는 어떻습니까? 모기는요?
 
왜 같은 동물을 두고 인간인 동물과 인간이 아닌 동물로, 같은 인간이 아닌 동물을 두고 식용동물과 반려동물로 나누어 놓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생각들, 마음들이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마음들을 불러내고 고정시키는지 알고 싶었어요. 이러한 궁금증의 결과가 무엇일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럼, 아예 육식을 하지 말자는 말이야?”, “내가 벼를 애완벼로 키우고 있는데, 그럼 쌀도 먹지 말자는 거지?”라 묻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그에 대한 답변은 한 가지일 리 없습니다. 누군가는 “응, 그래. 육식을 전면 중단하자는 얘기야”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해 온 비인간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얘기야”라고 답할 수 있겠지요.
 
이런 사고 연습은 중요합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관점과 잣대를 들이대는 것, 이는 비인간동물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우리는 수많은 동종인 인간동물을 두고도 이중잣대를 들이대 왔습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나누어 왔고, 지배가 당연한 사람과 지배 당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으로 정의해왔습니다.
 
예컨대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인 등 우리 사회 대부분의 소수자에 대한 이중잣대 말이지요. “동성애자들은 모두 천형을 받을 죄인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서부터 “동성애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내 딸이 레즈비언인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같은 대상을 두고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갖는 이중, 삼중의 마음들이 가능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원인을 고려하면서 소수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이 처한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을까요. 비인간동물의 문제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비인간동물에 대해 갖는 인간동물의 ‘이중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들, 그리고 그 원인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에 무엇이 있을지 알아봤습니다. 이를 위해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채식을 하고 있는 열 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어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 인터뷰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중 인식’의 원인과 극복을 위한 노력에 관해 소개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열 분의 간략한 정보를 미리 알려드릴게요. 익명으로 처리하였으며, 성별은 전원 여성임을 밝힙니다.
 
▲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 박김수진

[참고문헌]
김찬호. 2012. 「사람과 동물 사이」. 『인간동물문화』. 한국학술정보.
에리카 퍼지. 2007. 『‘동물’에 반대한다』. 박상준 역, 사이언스북스.

기사입력 :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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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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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10/02 [20:01]
빠른 시간에 훑어본 거라 제가 이 글을 다 이해했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봄으로서 다른 관점에서 문제가 보이기도 하고 대안이 떠올려지기도 하니까요. 좋다 나쁘다로 단정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골치아프더라도 생각해보는 데에서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머루 13/10/03 [17:29]
동물권 칼럼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한지 2년정도 되었고 veganism에 많이 공감하고 육식도 끊었지만 아직도 갈등할 때가 많아요.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끊임없이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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