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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을 거”라던 아리타에 있는 네 가지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14편: 소라의 고향 아리타 마을에 가다
이내   |   2024-03-23

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 소라가 나고 자란 아리타 마을. “아무것도 없을 거야.” 소라의 말처럼, 조용하고 수수한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이내)


후쿠오카 텐진에서 출발한 시외버스가 빽빽한 도시를 빠져나가 조금 쓸쓸한 대도시 변두리 지역을 지나고 나서는 한참 동안 논밭 옆을 달렸다. 소라(이번 여행에 초대해준, 부산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나고 자란 마을, 사가현 아리타에 도착할 무렵, 선명한 핑크색 하늘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

 

“아무것도 없을 거야.”

소라의 말처럼, 아리타는 조용하고 수수한 마을이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게 가장 좋았다. 눈을 잡아 끄는 자의식 강한 인공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시끄러운 간판도, 직선으로 그어진 자동차만을 위한 길도 보이지 않는다.

 

대중교통도 없으니 소라의 어머니가 자동차로 마중을 나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구 엄마와 수다 떨기를 즐겨 온 실력으로, 나는 소라 어머니 미와코 씨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보았다. 낯을 좀 가리는 듯 미와코 씨는 말수가 적었다.

 

소라의 어머니, 미와코 씨와 보낸 3일

 

집은 주인을 닮는다. 50년 넘게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해 온 미와코 씨의 공간은 온통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아리타는 90% 주민이 도자기 관련 일을 하는 마을이다. 도자기를 빚는 사람, 굽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파는 사람 등 분업이 철저한 게 특징이라, 예술가보다는 직업인에 가깝다고 했다.

미와코 씨에게 그림은 일이기도 하고 취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림은 일상이고 인생이었다. 천천히 조금씩 자신을 보여줄수록 나는 미와코 씨에게 스며들고 말았다.

또 사랑에 빠진 것이다.

 

▲ 깨진 도자기를 이용해 장식한 길. 아리타 마을은 주민의 90%가 도자기 관련 일을 한다. 도자기를 빚는 사람, 굽는 사람, 미와코 씨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 판매하는 사람 등 분업화되어 있다. (사진-이내)


우리가 하루 종일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하자, 미와코 씨는 차와 함께 가지와 오이 요리, 그리고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두부 요리 ‘고도후’를 내오셨다. 치즈 같은 식감과 맛이라 비건식으로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통이 어려워 일본 내에서도 이 지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라고 한다.

 

우걱우걱 맛있게 먹어 치우며 채소 중에서 가지와 오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미와코 씨가 조용히 답했다. “여름 채소를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집에 머무는 3일 동안 식탁 위에 다양한 방식의 가지와 오이 요리가 빠짐없이 올라왔다. 미슐랭 별을 받은 일본식 소바 요릿집에도 데려가 주시고, ‘온천 두부’라는 신기한 지역 특산 요리도 만들어 주셨다.

 

소라가 한 달 전부터 내게 못 먹는 음식이 없는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해서 솔직히 조금 귀찮았는데, 알고 보니 미와코 씨의 질문이었나 보다. 테이블 옆에 붙여 둔 포스트잇에 ‘이내 오는 날, 공연하는 날, 떠나는 날’이 쓰여 있는 걸 보고 가슴이 찡해져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 미와코 씨가 만들어주신 온천 두부와 토마토 요리. 밥상 위에는 언제나 아리타 도자기. (사진-이내)


스킵 제임스와 델타 블루스

 

정신 없이 지나간 아리타에서의 3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와코 씨와의 대화다.

거실의 원탁 테이블에서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되면 원탁 테이블을 치우고 요를 깔아, 나와 소라가 나란히 잠들었던 자리다.

 

첫날은 내가 선물로 들고 간 3집 앨범을 곧바로 틀어 잠들기 직전까지 무한 반복했다. 둘째 날 밤에는 친구를 만나러 간 소라 없이 미와코 씨와 긴긴 대화를 나누며 스킵 제임스의 블루스 앨범을 무한 반복으로 들었다.

 

미와코 씨가 아직 40대였던 시절, 이혼 직후 삶의 팍팍함을 달래 준 게 델타 블루스였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에서 미시시피 지역의 어쿠스틱 블루스 음악을 알게 되었고, 이후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던 큰아들을 통해 앨범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장식된 흑인 음악가들의 초상화가 눈길을 끌었는데, 미와코 씨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다.

 

▲ 미와코 씨가 직접 그린 블루스 뮤지션의 초상화. (사진-이내)


블루스 이야기에 솔직히 소름이 조금 돋았다. 나 역시 런던에서 가장 외롭고 막막했던 때, 델타 블루스를 들으며 위안을 얻곤 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더 블루스 - 소울 오브 맨〉을 보았고,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스킵 제임스의 같은 앨범을 들었던 거다.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지만 연주할 수는 없어서 아쉽다고 했더니, 미와코 씨는 언젠가 꼭 블루스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새로운 꿈이 하나 늘었다.

 

선물하는 기쁨을 알게 해준 장인의 가위

 

며칠 후, 오노미치에서 소라와 시간을 때우러 나간 산책 길에 우연히 작은 갤러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4대째 가위를 만드는 장인 가족의 전시를 보다가 우리는 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미와코 씨에게 꼭 어울리는 가위를 발견했다.

 

소라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름다운 가위 하나를 같이 사서 곧바로 우체국으로 달려가 아리타로 소포를 보냈다. 봉투에는 짧은 메시지를 적었다. 같이 다니는 내내 일본어 선생님이 되어 준 소라의 첨삭을 받아서.

 

▲ 오노미치 산책길에 우연히 들어간 작은 갤러리에서 마침 4대째 가위를 만드는 장인 가족의 전시를 보게 되었다. 미와코 씨에게 꼭 어울리는 가위를 발견해, 소라와 함께 구입해 선물로 보냈다. (사진-이내)


얼마 후, 그 선물을 평생 간직할 거라는 답장이 도착했다. 소녀처럼 웃는 미와코 씨의 얼굴과 다정한 목소리가 글자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꽃을 자르고, 종이를 자르고, 천을 자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선물을 하는 기쁨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리타에는 몇 백 년째 이어져 온 도자기가 있고, 소라의 어린 시절이 있고, 나의 첫 정식 일본 공연의 기억이 있고, 어느 밤 스킵 제임스를 함께 들었던 미와코 씨가 있다.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2014),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2015), 『되고 싶은 노래』(2017),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2020), 「걷는 섬」(2022)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2018),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2021, 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 @inesbriz

기사입력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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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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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ㅎ 24/03/24 [14:45]
가위 전시라니!!! 너무 내 취향. 
어떤 물건을 나보다 더 소중하게 써 줄 사람에게 선물하는 건 기쁜 일이죠. 그 마음 좀 알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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