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교육’이 무엇인지 말해야 할 때다

[이제는 페미니즘] 새롭게 열자, 페미니즘 교육①

엄혜진 2020-11-29

<기획의 글>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청이 증대하고 있는 시대, 페미니즘 교육의 개념, 의제, 실천의 역사와 현재성을 탐색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한다. “이제는 페미니즘” 연재 필진은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들이다. 이제IGE는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연구와 실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여성학 연구자 집단이다.

 

교육은 치트키인가?

 

사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육’이 만능 치트키로 등장한다. 성평등 이슈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이 여성혐오 표현을 함부로 쓰거나, 직장에서 여성 동료를 성적으로 대상화할 때, 혹은 공직자들의 형편없는 성인지 감수성이 드러날 때마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모두가 뜻을 모은다. 2018년에는 청와대 게시판에 ‘초・중등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올라와 21만 명이 호응한 바 있다. 

 

▲ 21만 명 이상 참여한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국민청원에 대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청와대Live]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답변” 영상 중에서. 2018년 2월 26일.   ©대한민국청와대 유튜브

 

일면 반가운 일이지만, 한국 사회가 공적 교육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사회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교육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사회에서 다시 교육이라니.

 

어쩌면 그래서 필연적인 현상일지 모르겠다. 지난 수십 년간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성평등 의제가 교육 및 노동 정책에 반영돼왔다. 학교와 일터에서 의무화된 성희롱・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예방교육이 대표적이다. 이 교육의 공통 목표는 당연히 성평등이다. 그러나 이 목표가 과연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심할 만한 경험과 정황이 여전히 넘쳐난다. 그렇다면 그저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 다시 한목소리를 내겠지만, 정작 토론은 모호하게 비어 있다.

 

정답을 갖고 개인을 계몽하는 행위로 바라보는 교육에 대한 보수적 통념이, 혹시 성평등 교육이나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일사불란한 요청 뒤에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아이들에게 여성혐오가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를 알려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이 개인의 의식, 나아가 실천과 자동 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와 사회가 스쿨미투 운동에 응당하게 화답하지 않는 환경에서라면,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배운 여성혐오에 대한 지식을 학교생활과 개인의 삶에서 반추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제 직장인들이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쯤은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성희롱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가해자와 기관장이 건재하는 환경이라면 성희롱 예방교육은 무용함을 넘어 희화화된 지식으로 남기 쉽다. 

 

▲ 2018년 10월 27일 서울시 교육청 앞, 10대 페미니스트 액션단 <작당모의>가 제안한 #스쿨미투 포스트잇 액션 중에서.  ©일다


교육이 사유와 성찰을 여는 과정이라는 데 보다 깊게 공감할 필요가 있다. 내용과 기법을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비판교육론자 헨리 지루(H. Giroux)의 정의를 따르자면, 교육은 문화정치의 한 형태다. 교육은 의미를 생산하는 풍토와 경험을 돌아보는 지적 활동이며, 따라서 권력에 대한 정치적 통찰과 실천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는 얘기다. 정치와 분리된 순간, 교육은 비판적 성찰의 의제를 소요와 불안으로 인식해 이를 달래기 위해 사용해왔던 구태의연한 알리바이에 그칠 뿐이다. 만능 치트키가 아니라 속임수(cheating)에 불과하게 된다.

 

특히 성적 차이의 의미와 이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었으면서 최신인 의제를 지식의 대상으로 삼는 페미니즘 교육은 정치적으로 안온하기보다 불온한 행위다. 페미니즘 교육은 이 불온함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페미니즘 정치의 활약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이 페미니즘 교육의 시작점이 된다. 독특한 주장이 아니라 페미니즘 교육이 주창된 이래 유지돼온 철학이다.

 

페미니즘 교육, 교육을 넘어서기 위한 교육

 

페미니즘 교육은 1960-197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에 의해 태동했다.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교육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됐다. 당대 여성들은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참정권, 교육권 투쟁 덕분에 남성과 동등하게 제도 교육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열등성을 전제하고 여성을 배제하는 교육 제도와 관행에 직면했다.

 

교과서는 성별 고정관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체육 동아리 활동은 남학생에게만 장려되었으며, 학교장과 대학 총장은 남성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차별은 졸업 이후의 성별화된 삶과 직결되어 있었다. 남성과 똑같이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에게 허용된 직업은 비서나 단순 서비스직 등 이른바 ‘여성적’ 직종이었고, 임금은 남성에 비해 이유 없이 낮았다. 학위를 갖고서도 주부, 아내, 어머니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던 대부분의 여성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처지였다.

 

페미니스트들은 교육이야말로 불평등한 젠더 관계가 발현되는 공간이자, 또한 충돌하고 경합하는 정치 투쟁의 장이라는 점을 꿰뚫었다. 교육을 변화시켜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또한 교육이 필요했다. 교육을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는 수단이자,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개입해야 할 초석으로도 바라본 것이다. ‘교육을 넘어서기 위한 교육’이 페미니즘 교육의 핵심 철학이 된 배경이다.

 

당대 페미니즘 운동의 실천 방식은 이 철학에 구체적 상상력을 제공했다.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지식과 앎의 남성중심성을 문제 삼았다. 여성의 경험에 대한 전문가는 다름 아닌 여성 자신이며, 여성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지식이 도출될 수 있다고 믿었다. 소그룹 단위로 모여 스스로 읽고, 쓰고, 말하기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하는 자기 교육과 동료 교육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가르침이 아니라 배움을, 앎의 방법으로서 전달이 아니라 대화를 강조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실험을 기반으로 교육자와 학습자 간의 수평적 관계, 비판의식의 강조, 생각과 행위의 결합 등을 교육의 과정, 환경, 방법에 적용하고자 했다.(송현주, 2002)

 

이렇게 볼 때 페미니즘 교육은 ‘페미니즘에 관한’ 교육일 뿐 아니라, ‘교육에 관한’ 페미니즘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페미니즘 교육은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교육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교육 패러다임으로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상호 불신을 야기하는 위계적 서열 경쟁 교육, 지배와 권력 구조에 기초한 폭력적 교육문화,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획일적 공장 모델식 교육, 비인간적 교육에 대한 비판적 대안 논의로 바라본 것이다.(곽삼근, 2008)

 

따라서 우리가 페미니즘 교육을 주창할 때, 이는 페미니즘 사상에 기반해 인간 해방, 여성 해방의 사유를 저변화하는 일일뿐 아니라, 교육을 해방적 과정으로 만드는 데 동참하는 일이 된다. 경쟁 교육이 정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더욱 긴요해진 인식이다. (2편에서 계속)

 

(본 글은 필자의 관련 논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참고문헌

곽삼근(2008), 『여성주의 교육학: 학습 리더십의 출현과 그 의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송현주(2002),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Andragogy Today, 제5권 3호, 1-28쪽

호프스태터, 리처드(2017), 『미국의 반지성주의』, 유강은(역), 교유서가(Hofstadter, Richard,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New York: Vintage Books, 1963)

훅스, 벨(2010),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윤은직(역), 모티브북(Hooks, Bell,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1984)

천관율·정한울(2019), 『20대 남자: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의 탄생』, 참언론시사IN북

 

*필자 소개: 엄혜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소장이다. 논문으로는 “페미니즘 교육은 (불)가능한가?”, “공교육의 시장화와 성평등: 가해자/피해자, 정상군/관심군, 그리고 수컷/암컷 이분법에 기반한 시민성 개발” 등이 있으며, 공동 저서로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개념들>이 있다.

기사입력 :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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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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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20/11/30 [13:57]
잘 읽었습니다! 교육은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이 되어야하는데 사법 영역에서 이뤄져야할 처벌이나 행정적인 관리를 소홀히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처럼 유명무실하게 무늬만... 그런 게 교육인 것처럼 되어버린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배워봐야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교육에 힘이 실릴 리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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